엄마의 사계절 김치 — 계절 따라 피는 손맛의 정원
80을 넘긴 손끝에서, 여전히 사계절이 담근다.
🌱 김치, 엄마의 시간
김치는 단지 발효된 채소가 아니다.
그건 엄마의 계절이고, 삶의 징표이며, 사랑의 기억이다.
80을 넘으신 엄마는 아직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김치를 담그신다.
엊그제는 열무와 얼갈이 두 박스를 들여오시더니,
하루 종일 부엌에서 부지런히 김치를 버무리셨다.
그 손은 느릿해졌지만,
한 포기, 한 포기 속엔 여전히 계절과 가족이 담겨 있었다.
🌸 봄 — 여린 채소로 시작되는 사랑의 속삭임
햇살이 살짝 따뜻해지고
살랑이는 바람 속에 향긋한 흙내가 묻어날 때쯤,
엄마의 부엌엔 여린 봄동이 쌓인다.
봄동김치는 봄의 아삭함을 그대로 품었다.
오이소박이⬅️는 가벼운 입맛을 일깨우며,
부추김치는 독특한 향으로 봄날 저녁상을 지킨다.
초봄 열무까지 곁들여지면,
밥은 없어도 김치만으로도 계절이 씹힌다.
"입맛 없다며? 요건 봄 입맛 딱 맞을 거야."
엄마는 김치 속에 항상 계절을 먼저 넣으신다.
☀️ 여름 — 시원한 물김치처럼 흐르는 정성
무더위가 시작되면
엄마는 얼음을 둥둥 띄운 열무물김치를 내오신다.
그 첫 국물 한 숟가락에,
지친 속은 한결 가벼워진다.
열무김치 ⬅️는 여름밥상의 주연이고,
얼갈이김치는 부드러움 속에 숨은 칼칼함을 지녔다.
오이물김치와 가지김치는 더위 속에서도 정갈한 맛을 낸다.
"덥다고 해서 그냥 넘기면 안 돼. 시원한 국물김치가 밥 살려."
여름, 어머니는 김치로 우리를 식히고 살린다.
🍂 가을 — 무와 배추가 단단해지는 시절
하늘이 높아지고
무와 배추가 제 맛을 내는 이 계절.
엄마는 손을 바쁘게 움직이신다.
총각김치(알타리)는 아삭하고 달다.
깍두기⬅️는 제철 무로 담아야 제맛이 나고,
배추겉절이는 가을 햇살처럼 담백하고도 깊다.
고들빼기김치는 쌉싸름한 묵직한 맛으로 계절의 깊이를 더한다.
“이제 곧 김장이지.”
그 말은, 어머니에게 겨울을 준비하는 의식이다.
❄️ 겨울 — 김장이라는 큰 의식
11월의 찬바람이 불면,
엄마는 배추 수십 포기를 절이기 시작하신다.
김장김치⬅️는 가족을 겨울 내내 지키는 양식이다.
동치미는 국물 하나에도 정성과 시간을 담는다.
갓김치, 파김치는 각자의 자리에서 겨울 밥상을 채운다.
“올해는 적당히 좀 하시라”는 말에 어머니는 웃으신다.
“그래도 담가야지. 김치 없으면 허전하잖아.”
그 허전함이란,
사실은 우리 마음이 채워질 그 그릇을 말하는 게 아닐까.
🫙 김치는 어머니의 사계절이다
엄마의 김치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다.
그건 삶의 흐름이고, 사랑의 고백이며, 사계절의 기록이다.
봄의 여린 마음,
여름의 시원한 배려,
가을의 깊은 준비,
겨울의 단단한 믿음.
그 모든 계절을
엄마는 김치로 담가오셨고,
우리는 그것을 밥상에서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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