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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영국 시인들의 명시와 해설 – 한글 번역까지

by crustacean25 2025. 4. 11.

크리스티나 로세티 (Christina Rossetti, 1830–1894)

섬세하고 영적인 시 세계를 가진 여성 시인입니다. 사랑과 죽음, 신비에 관한 시가 많습니다.

작가에 대한 스토리는 글의 말미에 적어 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남긴 조용한 이별의 인사.

Remember-사진

 

Christina Rossetti – Remember (1862)

Remember me when I am gone away,
Gone far away into the silent land;
When 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
Nor I half turn to go yet turning stay.

Remember me when no more day by day
You tell me of our future that you planned:
Only remember me; you understand
It will be late to counsel then or pray.

Yet if you should forget me for a while
And afterwards remember, do not grieve:
For if the darkness and corruption leave
A vestige of the thoughts that once I had,

Better by far you should forget and smile
Than that you should remember and be sad.

내가 떠나면, 기억해줘요
그 조용한 나라로 멀리 떠나면
더 이상 내 손을 잡을 수 없고
내가 뒤돌아 머뭇거리던 모습도 볼 수 없을 때

당신이 매일 말하던
우리의 미래 이야기도 더는 들을 수 없을 때
그저 기억해줘요, 당신은 이해할 거예요
그때는 충고도, 기도도 늦었음을

하지만 만약 나를 잠시 잊었다가
다시 떠올리게 되더라도, 슬퍼하지 말아요
어둠과 썩음이
내 남긴 생각들을 지워버렸다면

차라리 웃으며 잊는 것이
슬퍼하며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나을 거예요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Remember 해설 – 사랑과 이별, 그리고 기억의 방식에 대하여

“기억해 주세요. 내가 떠난 뒤에도.”
_크리스티나 로세티_의 대표 시 _“Remember”_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그리고 그 뒤에 남겨질 사람을 향한 마지막 인사를 담은 시입니다. 하지만 이 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기억해 달라'는 말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슬픔까지 걱정하며, 잊혀지는 것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넓은 사랑을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아 보세요.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려 보세요.
아주 깊이 사랑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람을요.

“기억해 주세요.”
그녀는 말합니다.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마치 바람결에 흩날리는 수선화처럼,
한 줌의 빛을 남긴 채 사라지는 목소리로.


로세티의 _Remember_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남기는,
아주 짧은 고백이자 마지막 인사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도, 나를 기억해 주세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기억 속에 남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존재의 마지막 의미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시는, 그 바람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혹시 내가 잊혀진다면… 그 또한 괜찮아요.”
이 대목에서 시는 방향을 틉니다.
기억해 달라는 간청이,
상대방의 슬픔을 걱정하는 위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차라리 웃으며 잊는 것이,
슬퍼하며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몰라요.”


이 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기억 속에 남는 것일까요?
아니면, 상대방의 삶을 평안하게 떠나보내는 것일까요?

로세티는 이 시를 통해,
사랑이란 결국
자신이 아닌,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걱정하는 마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기억 속에 오래 머무는 대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없이도 평안하길 바랍니다.
그 사랑은 결코 소유가 아니며,
그리움조차 상대방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깊고 넓은 마음입니다.


이 시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는 넓습니다.
죽음을 앞둔 연인의 고백이기도 하고,
남겨진 이를 향한 마지막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며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고 싶은가?”
그리고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고 싶지는 않을까?”


이 시는 낭독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저녁 무렵, 차 한 잔과 함께 읽기에 알맞고,
또는 밤에 불을 낮추고, 클래식 음악과 함께 흘려보내기에도 좋습니다.

🎶 추천 배경 음악:
에릭 사티 – 짐노페디 No.1
클로드 드뷔시 – 레베스코


💡 이 시의 낭독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고요한 사랑의 기도를 전하는 일입니다.

이 시를 누군가에게 읽어주고 싶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이 이미 아주 아름다운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시의 구조와 주제

이 시는 소네트(Sonnet)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랑과 죽음을 다루는 데에 적합한 형식입니다. 로세티는 이 형식을 빌려, 죽음을 앞둔 이가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로 시를 구성합니다.
처음 여덟 줄(옥타브)은 “기억해 달라”는 간절함으로 시작합니다. 죽은 뒤에도 잊히고 싶지 않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셋셋행)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만약 내가 잊혀진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기억이란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화자는, 상대방이 슬픔에 젖기보다는 차라리 웃으며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랑의 진정한 형태 – 소유가 아닌 배려

로세티의 _Remember_는 한 인간의 가장 고요한 이별 인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이 상대방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는가입니다. 사랑이란 결국, 내가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걱정하는 마음임을 시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사랑과 죽음에 대한 내면의 균형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의 부재가 삶을 짓누르지 않기를, 그리움이 삶을 멈추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포기. 이 시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너그러움에 있습니다.

현대 독자를 위한 감상 포인트

  • 잊는다는 것은 꼭 배신이 아닙니다.
  • 남겨진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진짜 사랑입니다.
  • 기억은 슬픔이 아닌 따뜻한 그림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 조용히 낭독해보면, 시의 울림이 더 깊어집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 (Christina Rossetti, 1830–1894) – 조용한 내면의 불꽃

“고요 속에서, 세상과 끝없이 대화한 시인”

크리스티나 조지나 로세티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자,
섬세한 감성과 깊은 신앙, 고요한 슬픔을 간직한 내면의 시인이었습니다.
1830년 런던에서 태어난 그녀는 문학과 예술에 둘러싸인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오빠는 유명한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로,
그녀의 삶과 시는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의 정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의 굴곡과 시의 기도

크리스티나의 삶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심약한 건강, 반복된 병환,
그리고 깊은 기독교 신앙과 수도자 같은 삶으로 인해
세속의 성공보다 영혼의 평온을 갈망했습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몇 차례의 청혼을 받았으나
신앙적 이유로 모두 거절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그녀를 더더욱 침묵과 고요의 세계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탄생한 시들은
마치 하나의 기도처럼,
아름답고 맑으며, 때로는 차가운 이별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주요 작품과 문학 세계

가장 유명한 시로는

  • ⟪Goblin Market⟫ (고블린 시장)
  • ⟪Remember⟫ (기억해 주세요)
  • ⟪When I am Dead, My Dearest⟫ (내가 죽은 뒤 사랑하는 이여)
  • ⟪A Birthday⟫ (생일)
    이 있습니다.

그녀의 시는 종종 죽음과 기억, 신앙과 절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내면적인 갈등을 조용히 다룹니다.
특히 Remember_나 _When I am Dead... 같은 시는
죽음을 다루면서도 오히려 살아 있는 이를 향한
위로와 이해, 그리고 너그러움으로 가득합니다.


로세티 시의 특징

  • 간결하지만 음률이 살아있는 언어
  • 종교적 상징과 영적 이미지의 사용
  • 죽음, 이별, 슬픔을 통한 삶의 해석
  • 여성의 내면과 고요한 저항

로세티는 어떤 거대한 주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웅변하지 않았고,
대신, 작고 조용한 말들로 독자의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말년과 죽음

말년에는 그레이브스병과 유방암으로 고통을 겪으며
보다 더 깊은 고요의 세계로 향했습니다.
1894년, 64세의 나이로 런던에서 생을 마감한 그녀는
끝까지 신을 향한 시인, 그리고 슬픔을 따뜻하게 감싸는 언어의 마법사로 남았습니다.


대표 어록

“Better by far you should forget and smile
Than that you should remember and be sad.”
“차라리 웃으며 잊는 것이
슬퍼하며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나을 거예요.”


마무리 – 로세티를 왜 기억해야 할까요?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그 침묵은 수많은 이들에게 더 깊이 들렸습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빛나는 시인입니다.
감정에 솔직하고, 그러나 단정하고 절제된 언어를 통해
우리가 놓치기 쉬운 내면의 진실을 건드리는 시인.
그녀의 시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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